플루타르크 영웅전

로마의 서희 장군 파브리키우스

공희준 2014. 12. 15. 01:18

피로스(BC 319~272)는 현재의 그리스 북서부와 알바니아 남부 지방에 걸쳐 있던 작은 왕국인 에피루스의 군주였다. 그는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상처뿐인 영광인, 고비용 저효율의 전쟁을 평생 동안 벌이다가 항우처럼 일어나 여포처럼 스러져갔다. 전설에서는 트로이 전쟁 최강의 용사인 아킬레스의 고향으로, 실제 역사에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외가의 본거지로 알려진 지역의 통치자로서는 어쩌면 가장 안성맞춤의 인생을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플루타르크 영웅전」에 서술된 피로스의 삶을 피로스 자신과 관련된 본기와, 그의 운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인사들에 관계된 열전으로 구분해 정리하고 싶은 충동을 누르기 어려웠다. 사마천의 관점에서 피로스라는 문제적 인간을 입체적으로 조명해보고 싶었던 탓이다.


① 로마의 서희 장군 파브리키우스


이탈리아 반도 남단에 위치한 그리스 식민도시들의 ‘오퍼’를 받고 스스로를 국왕 대우 용병 대장으로 하방시킨 피로스는 로마군과 몇 번의 전투를 치른다. 피로스의 군대가 로마군에게 이기기는 했지만 결정적 승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피로스의 핵심 자산인 노련한 지휘관들과 경험 많은 고참 병사들의 손해가 막심했던 까닭에 장기적 견지에서는 피로스에게 불리한 형세였다. 게다가 피로스의 비장의 무기인 코끼리들의 손실도 그에게는 무시하기 힘든 타격이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직감한 피로스는 로마군과 휴전 협상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때 양국 사이의 포로에 관한 협정을 책임진 로마 측의 대표자로 파견된 사람이 파브리키우스였다.


피로스는 파브리키우스를 돈으로 회유하려 시도했으나 여의치 않자 다음날은 완전무장한 코끼리로 그를 협박했지만 이 또한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이도저도 안 되자 최후의 수단으로 피로스 진영의 최고 브레인이라고 할 키네아스가 나서서 파브리키우스와 심오한 철학 논쟁을 펼쳐 그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꾀해보지만 이 카드 역시 실패하고 만다. 당시의 지성계를 풍미하던 에피쿠로스 철학에 대한 조예에서 파브리키우스의 식견이 키네아스의 안목에 결코 뒤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진짜로 사람 욕심이 많아서였는지, 아니면 일종의 이간책이었는지 지금의 우리로서는 정확한 동기를 확인할 길이 없으나 피로스는 파브리키우스에게 급기야 자기 나라에 와서 벼슬을 할 생각이 있는지를 타진해보았다. 피로스의 돌발적 제안에 파브리키우스는 이와 같이 담담하게 대꾸하였다고 한다.


“그러면 전하에게 불리할 것입니다. 왜냐면 이제까지 전하를 섬기던 사람들이 저와 사귀게 되면 전하보다는 제가 에피로스의 국왕이 되기를 바랄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병철 선생이 번역한 범우사판 ‘플루타르크 영웅전’에서 각색․인용함)


이 무렵까지만 해도 제2의 알렉산드로스가 되겠다는 당찬 야망이 아직은 남아있었기에 피로스는 파브리키우스의 오만한 대꾸를 통 크게 웃으며 넘어갔다고 한다. 분노하기는커녕 그는 피로스군에 사로잡힌 로마군 포로들이 고향에서 로마의 고유 명절인 사투른 신을 기념하는 축제를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하는 아량을 베풀기도 한다. 모국에서 명절을 쇤 로마군 포로들은 전원 수용소로 귀환한다. 그들에게는 적군의 삼엄한 감시보다도 고국의 명예를 더럽히지 말라는 아군의 명령이 더욱 무섭고 엄중했던 이유에서였다. 이게 바로 팽창가도를 질주하던 청년기 로마의 모습이었다.


파브리키우스는 피루스와의 협상을 로마에게 유리하게 이끈 공로를 인정받은 덕분인지 얼마 후에 집정관으로 선출되어 국가 경영의 대업을 맡게 된다. 그런데 피로스의 시의, 곧 주치의가 그를 독살하는 조건으로 로마에 거액의 대가를 편지로 요구해온다. 그러자 파브리키우스는 이 계획을 피로스에게 알려줌으로써 적장의 생명을 구한다, 피로스의 아픈 곳을 또다시 후벼 파는 일침과 더불어.


“전하께서는 자기편에 대해서도, 자기의 적에 대해서도 모두 오판하고 계십니다. 전하는 정직한 사람들(로마인)과는 싸우면서, 악한 무리(주변의 간신배들)와는 친하게 지내고 계시니 말입니다.” 한마디로 지피지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주제에 감히 로마에게 무모하게 덤벼들었다는 통렬한 꾸짖음이었다.


파브리키우스가 단순한 의협심이나 정의감의 발로에서 적군의 총사령관인 피로스에게 독살 음모를 귀띔해주지는 않았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 시점까지도 피로스의 군영에는 유능한 장수들과 더불어 좀 더 성장하면 지략에서나 용기에서나 아버지를 능가할지도 모를 왕자들이 여러 건재해 있었기 때문이다. 피로스의 목숨을 치사한 방법으로 섣불리 빼앗았다가는 적군의 분노를 괜히 돋우어 로마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던 전세를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 위험성을 로마 입장에서는 속 편히 전적으로 배제할 수가 없었다.


플루타르코스의 저술에서 파브리키우스를 다룬 서술은 이 정도에 머물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사람됨이 어떠했는지를 알아채기에는 결코 부족한 분량이 아니리라.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도 않았지만, 한 사람만의 노력과 업적만으로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파브리키우스와 같은 비중 있는 주연급 조연들의 맹활약이 천년제국 로마의 탄생과 약진을 가능하게 하였던 것이다.


- 이후의 열전 연재 순서

② 피로스의 범증 키네아스

③ 썩어도 준치, 스파르타인들


※ 「플루타르크 영웅전」 읽기 모임의 이번 주인공은 로마의 ‘대숙청 시대’를 개막시킨 가이우스 마리우스입니다. 시간 및 장소는 12월 18일 목요일 북촌학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