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장면이 제갈공명을 연상시키는 사람입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영욕을 다채롭게 수놓은 인물들을 현대적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조명해놓은 '열국영웅전'의 저자인 양승국 선생은 메갈로폴리스의 장군 겸 정치가였던 필로포이만(BC 253~183)을 이렇게 평가하였다.
내란과 외침으로 잃어버린 그리스 민족의 영광과 자주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평생을 바쳤음에도 끝내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적군에게 사로잡혀 차가운 지하감옥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 필로포이만의 마지막이 한실 중흥의 대의를 미완의 과제로 남겨두고 오장원의 전쟁터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 제갈량의 모습과 여러모로 겹쳐 보였던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필로포이만은 우리에게는 몹시 생소한 존재다. 70살이라는, 고대는 물론이고 20세기 이전의 기준으로도 절대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냈지만 그의 활동범위가 매우 협소해서였다. 크레타에서 용병으로 일한 몇 년간을 제외하고 그의 행동반경은 거의 전적으로 펠로폰네소스 반도와 그 인근 지역에 국한되었다.
우리가 눈여겨봐야만 할 사실은 지극히 제한된 영역에서 활동한 그를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아주 비중 있게 언급했다는 점이다. 사분오열된 이탈리아 반도의 통일을 도모하는 데 필요한 군사적 재능을 체득한 군주의 출현을 갈망했던 마키아벨리에게 어디를 가든 그곳의 지형지물을 전술적으로 어떻게 활용할지를 부단히 고민하고 궁리했던 필로포이만이 대단히 이상적 유형의 통치차로 여겨진 것은 전연 이상할 구석이 없다고 하겠다.
필로포이만에게는 마키아벨리를 흡족하게 만들어줄 중대한 업적이 하나 더 있었다. 그는 전쟁의 주역이 이미 용병으로 넘어간 당대의 대세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동체의 부름에 자발적으로 응하는 자유민으로 구성된 시민군을 조직하는 일에 성공했던 것이다. 필로포이만의 그리스 세계와 마키아벨리의 이탈리아 반도 모두 외국군의 침략과 고용된 용병대의 횡포 사이에서 고래 싸움에 등 터진 새우 신세였음을 감안하면, 필로포이만이 사람을 사서 본인 대신 전장으로 내보내던 사회적 악습을 근절한 것이 얼마나 큰 위업이었는지 명약관화하게 인식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플라톤은 필로포이만을 높이 쳐줄 수가 없었다. 원인은 단 한 가지. 필로포이만이 플라톤이 죽고 나서 한참 뒤에 등장한 인물인 탓이었다. 플라톤이 필로포이만과 동시대에 생존했거나 또는 후세인이었다면 그 역시 마키아벨리만큼이나 아낌없는 찬사와 갈채를 그에게 보냈으리라. 필로포이만은 플라톤이 국가의 수호자 계급에게 요구한 대표적 자질인 용기와 절제를 시종일관 실천했던 것이다. 그는 넓적다리에 박힌 적군의 창을 태연히 빼내고 다시 전투에 임할 정도로 용감했고, 가난한 독신 생활을 고집했던 사례에서 보이듯이 일체의 물질적 욕구와 육체적 욕망에 찰나도 굴복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은 그가 살고 있는 시대의 산물이다. 필로포이만의 한계와 좌절도 결국은 시대적 환경과 조건에서 비롯되었다. 그가 종횡무진으로 누빈 펠로폰네소스 반도는 신흥 대국 로마와 전통의 강국 마케도니아 간의 대리전이 빈발하는 땅이었다. 군국주의의 대명사 스파르타마저 로마에 빌붙어 가까스로 연명을 꾀하는 처지였다. 따라서 페리클레스 시대에 꽃피운 그리스의 부와 위세는 오래전에 사라지고 말았고, 그 결과 필로포이만은 선령이 40년이나 된 낡은 목선을 타고 해전에 나갔다가 참패를 당하는 굴욕을 당해야만 했다. 그에게는, 그리고 그리스에게는 새로이 군함을 건조할 돈이 없었던 것이다.
필로포이만 개인의 역량만으로 그리스가 로마의 속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로마는 펠로폰네소스에 직접 개입하기가 어려웠다. 필로포이만이 여전히 건재한 때문이었다. 가정법은 부질없다지만 필로포이만이 비타협적 자주 노선을 조금 완화하고, 마케도니아와 제휴해 로마에 대항했다면 좀 더 효과적으로 로마와 그 앞장이가 된 펠로폰네소스의 다른 폴리스들에게 맞설 수 있었으리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해보고 싶다.
필로포이만은 스스로를 군인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분류한 사람이었다. 지중해 세계를 요동치게 한 변화무쌍한 국제정세를 꿰뚫어볼 안목까지도 그에게 기대하는 것은 적 앞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았던 투철한 군인정신을 자랑한 필로포이만에게는 너무나 무리한 바람일 듯싶다. 제 나라의 군사주권을 외국에게 또다시 넘겨주고도 아무런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군상들이 대통령으로, 국방장관으로, 국회의원으로 군림하는 한국인들에게는 고대사 최고의 헌신적 독립투사에게 그러한 요구를 할 자격이 특히나 더더욱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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