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타르크 영웅전

리산드로스, 역성혁명을 꿈꾼 전쟁영웅 ⑦

공희준 2015. 2. 20. 18:22

리산드로스는 한국영화 국제시장에 등장하는 달수처럼 정말 열심히 살았다. 코린트의 반란을 진압하려고 출동한 스파르타 군대가 적의 우람한 성벽 앞에서 머뭇거리자 그는 토끼보다도 더 깡충깡충 뛰어다니며 병사들을 독전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리산드로스와 달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심연과 같은 커다란 차이점이 가로놓여 있었다. 제 새끼만 알뜰히 챙긴 달수와는 다르게 리산드로스는 남의 자식에 관련된 일까지 시시콜콜히 참견했기 때문이다.

 

이는 전적으로 리산드로스의 오지랖이 주제넘게 넓었던 탓일까? 리산드로스한테는 평범한 필부인 달수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무엇이 있었다. 로마에서는 두 명의 집정관이 국정을 책임졌고, 스파르타에서는 2명의 군주가 공동왕 자격으로 국가를 통치했다. 리산드로스는 파우사니아스 말고도 스파르타의 또 다른 군주인 아기스 2세의 총애를 받는 권신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가 왕의 후사를 정하는 문제에 간여하는 것을 시건방진 월권행위로만 여기기는 어려웠다. 더욱이 아기스가 남기고 간 아들인 레온티키다스는 혈통이 의심스러웠다. 레온티키다스는 아테네에서 쫓겨난 알키비아데스가 스파르타로 망명을 왔을 당시에 아기스 2세의 왕비 티마이아와 간통해 낳은 아들이라는 소문이 자자했기 때문이다.

 

리산드로스는 아테네의 피가 흐르는 조카를 대신해 헤라클레스의 진정한 후손이라고 할 삼촌이 왕위를 이어야 한다고 판단한 듯싶다. 리산드로스는 선왕의 바람을 어기고 왕의 아우인 아게실라우스를 지지하였고, 아게실라우스는 리산드로스가 설득한 대로 자기가 유일하고도 정당한 계승자라고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나섰다.

 

아게실라우스가 보위에 오르려면 다리를 저는 인물이 왕좌에 앉으면 심각한 국난이 끊이지 않으리라는 신탁을 어떻게든 무력화시켜야만 했다. 왜냐면 아게실라우스는 보행이 불편했던 까닭에서였다. 리산드로스는 유명하고 권위 있는 예언자 디오피테스의 입을 거쳐 나온 이 신탁의 본뜻은 사생아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빗대어 경고한 데 있다고 강변함으로써 아게실라우스의 앞을 가로막은 최후의 중대한 장애물을 말끔히 치워줬다. 두 명의 공동왕들 중 한 자리를 아테네의 사생아가 차지하게 되면 나라를 떠받치는 왕국의 두 다리 가운데 하나에 결함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리산드로스가 펼친 교묘한 논리의 요지였다.

 

삼촌에게 밀려 왕위를 잇지 못한 레온티키다스는 과연 진짜로 알키비아데스의 핏줄이었을까? 플루타르코스는 여기에 관해 명쾌하게 가부를 내리지 않는다. 나는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운 정도전 등의 신진 사대부들이 우왕과 창왕이 공민왕의 아들이 아니라 요승 신돈의 소생이었다는 식으로 고려의 역사를 제멋대로 폄하하고 곡해했었던 패륜적 사건을 환기시키는 것으로 대답을 갈음하련다.

 

인류사를 살펴보면 권력을 놓고서 친형제간은 물론이고 아버지와 아들 간에도 골육상쟁이 벌어진 사례들을 무수히 관찰할 수가 있다. 삼촌이 조카로부터 권좌를 빼앗는 것도 모자라 아예 남의 집 새끼로 몰아붙이는 만행쯤이야 권력의 비정한 생리를 고려해보면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었으리라. 계유정난을 일으켜 단종에게서 왕권을 탈취한 수양대군이 친조카를 집안 호적에서 완전히 삭제하지 않은 것이 그나마 오히려 자비롭게 느껴질 지경이다.

 

이사는 한비자와 더불어 대표적 법가 사상가로서 진시황을 보필해 6국을 멸망시키고 사상 최초로 중국을 통일하는 데 크게 이바지한 초나라 출신의 명신이었다. 그러나 이사는 시황제가 붕어한 직후 환관 조고의 협박과 꼬임에 넘어가 조고 일당이 적장자인 태자 부소에게 자결을 강요하고, 능력도 성품도 의문투성이인 차남 호해를 2세 황제로 옹립하는 짓을 묵인하고 말았다. 조고가 음모의 전모를 샅샅이 알고 있는 이사를 살려둘 리 만무했다. 결국 이사는 조고의 계략에 말려들어 허리를 베어 죽이는 요참형에 처해지고, 그의 일족은 멸문지화를 당하고 만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의 리산드로스의 공적은 통일전쟁에서의 이사의 활약상에 필적했다. 후사에 관여했다가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운명도 비슷했다. 리산드로스는 삼족이 비명횡사하는 최악의 사태는 요행히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명문가의 청년들과 약혼했던 딸들이 그의 사후에 모조리 일방적으로 파혼을 당한 점을 보면 목숨만 간신히 붙어있을 따름이지, 가문 전체가 결딴나기는 이사와 50100보였다.

 

리산드로스가 킹메이커 역할에서 안분지족했다면 그의 권세와 영화는 보다 지속가능성을 띠었을지도 모른다. 정도전이 이성계에게 요동 수복을 종용하며 한층 더 원대한 꿈을 꾸었듯이, 리산드로스는 진의가 뭐였건 아게실라우스가 페르시아 정복을 꾀하도록 집요하게 부추겼다. 그는 페르시아 정벌에서의 최고 사령관직을 노리고서 아시아에서 활동하던 심복들로 하여금 리산드로스 자신을 그 직책에 추천하는 편지들을 왕에게 쉬지 않고 보내게끔 공작하였다. 리산드로스 세력의 조직적 여론전에 혹한 아게실라우스는 서른 명으로 구성된 군사고문단을 이끌고 소아시아 순방에 착수했다. 페르시아가 경계심을 갖지 않도록 아마 적당한 구실을 둘러댄 방문길이었을 게다.

 

30인 고문단의 수장은 당연히 리산드로스가 맡을 분위기였다. 한데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고, 왕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던 애당초 기획의도의 한계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나는 상황이 빚어졌다. 일행이 들르는 곳마다 주민들이 리산드로스에게는 뜨거운 환영을 보내면서도 왕에 대해서는 거의 듣보답 취급을 했던 것이다. 누가 몸통이고 누가 깃털인지, 누가 주인이고 누가 종인지가 모호해지는 순간이었다.

 

플루타르코스는 연극에서의 주연과 조연의 관계를 예로 들며 리산드로스가 왕에게 건의해 성사된 아시아 여행에서 모든 영광과 갈채는 리산드로스에게 돌아가고 정작 아게실라우스 왕은 있으나 마나한 조연 대접을 받는 어색한 모양새가 연출되었다고 플루타르크 영웅전에서 기술해놓고 있다.

 

아게실라우스가 현대의 입헌군주제 아래에서와 같은 명목상의 국왕 노릇에 만족하려고 조카를 밀어내고서 왕위에 등극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는 탁월한 성군은 아니었으되, 신하의 꼭두각시 신세가 된 것조차 파악하지 못할 만큼 아둔한 인물 또한 아니었다. 아게실라우스는 1인자 행세를 하는 2인자를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 보내기로 단호히 결심하였다. 리산드로스에게 합당한 원위치가 권부의 2인자의 지위인지, 인생의 출발점이었던 평범한 백성의 신분인지는 아게실라우스와 리산드로스 사이의 긴장감 도는 역학구도가 종국적으로 판가름할 터였다.

 

유명무실해진 왕권의 위엄을 회복시키고, 리산드로스의 비대해진 권력을 꺾는 첫수로 아게실라우스는 리산드로스에게 군대의 지휘관직을 비롯한 일체의 중요한 직위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는 리산드로스의 계보나 파벌로 분류되는 인사들로부터 오는 어떠한 요청과 부탁도 들어주지 않았다. 리산드로스를 이빨 빠진 호랑이로 만들려는 포석이었다. 별다른 반발과 분규를 부르지 않고서 이러한 작업이 진행된 것으로 볼 때 후세의 우리는 두 가지 사항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아게실라우스의 정치적 수완이 만만치 않았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리산드로스가 그동안 너무 많은 적을 만들어왔다는 점이다.

 

아게실라우스는 리산드로스의 강대한 권력을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고 판단하고선 마지막 결정타를 가했다. 그를 왕의 식탁에서 고기 썰어주는 사람으로 임명한 것이다. 이 자리가 무슨 함의를 지니는 관직인지를 플루타르코스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왕과 수시로 대면할 수 있고,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들은 독살의 위험에 시달리는 사실을 감안하면 아주 비천한 하급직은 아니었으리라. 허나 아테네의 정복자에게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벼슬이었음은 분명하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에서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정리해고 대상자의 책상을 갑자기 복도에 내다놓는 것만큼이나 모욕적 처사였다. 리산드로스는 이 황당한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즉시 왕을 알현해 전하는 신하를 누르는 방법을 대단히 잘 알고 계십니다라고 토로함으로써 패배를 깨끗이 인정했다.

 

리산드로스의 손톱과 발톱이 남김없이 빠졌음을 확인한 아게실라우스는 그제야 다시 번듯한 보직을 하사하였다. 리산드로스를 헬레스폰투스 해협에 사신으로 파견한 것이다. 보임지에 도착한 리산드로스는 페르시아의 장군 스피트리다테스의 반란을 사주하고 그를 마침내 스파르타로 귀순시킨다. 과거의 동맹자이자 현재는 불구대천의 철천지원수가 돼버린 파르나바주스에게 복수의 한방을 제대로 먹인 셈이었다.

 

나라를 위해 이렇게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충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아게실라우수는 리산드로스에게 그에 상응할 아무런 보상과 은전도 베풀지 않았다. 그를 향한 임금의 의구심과 노여움이 여전히 가시지 않은 탓이었다. 임기를 마치고 쓸쓸히 귀국한 리산드로스의 가슴 속으로 고생한 인간 따로, 누리는 인간 따로인 스파르타의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정치구조에 대한 절망과 회의감이 사나운 폭풍우처럼 거세게 엄습하였다. 그의 마음에 깊고 넓게 똬리를 튼 응어리가 특정한 국왕 일개인에 대한 막연하고 추상적인 불만과 원망의 단계를 넘어서 체제 자체를 혁명을 통해서라도 뒤엎고 말겠다는 뚜렷하고 구체적인 목적의식으로 형태를 바꾸는 것은 이제 단지 시간문제에 불과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