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의 해가 이제야 밝았다. 2015년이 한 달 하고도 보름이 넘게 지나서야 비로소 양의 해가 시작된 것은 정부에서 표준으로 채택한 양력과 시민사회에서 새해의 첫날로 맞이하는 음력 사이의 시차가 금년에는 윤달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유난히 큰 탓에 있다. 서세동점의 시기에 문명개화의 상징과도 같았던 양력설이 퇴조하고, 음력설이 민족의 명절로서의 위상과 정통성을 회복한 사태는 우리나라에서 민이 관을 상대로 거둔 몇 안 되는 승리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양의 해가 도래한 까닭에 양에 대한 별별 얘기들이 언론을 중심으로 세간에 회자되고 있다. 양은 수천 년에 걸쳐 벼농사 위주의 농업경제를 영위해온 한국인들에게는 실생활에서는 별로 친숙한 동물이 아니다. 한국으로 중국인들이 대거 입국하면서 도처에 생겨난 양꼬치 전문점들이 우리와 양을 이어주는 거의 유일한 연결고리라고 하겠다.
양이 흔한 가축이 아니었던 동아시아의 벼농사 지역과는 다르게 목축과 유목이 중요시되는 유럽대륙과 중동지방에서는 양을 둘러싼 다양한 비유와 설화들이 무수히 존재한다.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 인간을 “양의 탈을 쓴 늑대”에 견주는 표현이야말로 이의 대표적 사례이리라.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도 양을 소재로 한 명언을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양의 지휘를 받는 사자들로 이뤄진 군대보다는, 사자가 이끄는 양떼로 구성된 군대가 전쟁에서 이기기 마련이라고 일갈했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능력과 자질이 나라와 민족의 흥망성쇠를 좌우함을 마키아벨리의 바로 이 명제처럼 의미심장하게 웅변해주는 예시도 드물다.
카이사르의 후계자 옥타비아누스가 스스로를 아우구스투스, 즉 존엄한 자로서 호칭하면서 사실상의 황제로 등극한 이후의 제정 시대의 로마사를 ‘관리와 수성의 역사’로 규정할 수 있다면, 700여 년에 이르는 그 이전의 장구한 로마의 역사는 ‘성장과 팽창의 역사’로 자리매김할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는 부분은 건국 초기의 로마는 우수한 인적 자원을 풍부히 보유한 국가가 결코 아니었다는 점이다. 형편없고 오합지졸의 백성들로 가득 찬 나라였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에 의하면 로마를 공동으로 창건한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가 새로운 도시의 기반을 닦은 다음 실질적으로 제일 먼저 착수한 작업은 외국으로부터 고급 인재들을 영입하려고 헤드헌팅에 나선 것이 아니었다. 형제가 역점을 두고 추진한 정책은 도망자들을 위한 피난처를 조성하는 일이었다. 이곳으로는 잡히는 즉시 처형당할 도망 노예, 빚을 갚을 길이 막막한 채무자, 원래의 고향에서는 더 이상 생활하기가 불가능해진 갖가지 유형의 범죄자 등이 쉬지 않고 몰려들었다고 한다.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당시의 기준으로는 인간쓰레기들과 다름없었을 이런 도망자들을 그들이 은신해 있는 피난처가 거룩한 신탁이 깃든 성소라는 구실을 대며 최선을 다해 끝까지 보호해줬다. 장기적으로 사람을 키울 생각은 하지 않고서, 지금 당장 밖으로 드러난 성적이나 스펙만 따지는 현대 대한민국의 대학과 기업들은 감히 상상하지 못할 용단이고 투자이다.
평균적 한국인들이 사자의 모습에 가까운지, 양의 모습에 가까운지는 논란의 대상일 수가 있다. 국뽕으로 비판받는 부류는 평균적 한국인에게서 사자의 면모를 발견하려 애쓸 테고, 국개론자로 악명을 떨치는 이들은 소신 없이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양떼들로부터 대한민국 국민의 전형적 자화상을 찾아냈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의견이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양측 모두 평균적인 한국의 위정자나 사회지도층들이 양이라는 동물과 관련된 모든 부정적 이미지와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는 데에만큼은 그럼에도 전적으로 의견이 일치할 듯싶다.
로마는 하루아침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와 더불어 로마는 최고의 인재들을 그러모아 이뤄지지도 않았다. 하나하나 떼어놓고 살펴보면 정말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무명씨들이 불멸의 이름인 로마를 탄생시키는 모태가 되었다. 그러니 자신이 책임진 조직과 집단에 사람이 없다고, 인재가 부족하다고 불평하지 말라. 진짜로 없어서 문제인 것은 리더의 자리에 있는 인물의 리더십일 뿐이다.
☞ 북촌학당 회보에 보낸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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