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타르크 영웅전

테세우스, “모든 나라 사람들이여, 아테네로 오시오” ③

공희준 2015. 3. 11. 01:20

아이게우스는 아침에 일어난 후에야 간밤에 잠자리를 함께한 여인이 피테우스의 딸이었음을 깨달았다. 이렇게 둔감한 사내였음에도 아이트라가 열 달 후 자기의 아들을 낳아줄 것이라는 촉이 왔다고 하니 참으로 희한한 노릇이다. 그는 동침한 여인의 정체를 진짜로 몰랐을까?


팔라스 가문의 자랑인 50명의 아들들에게 당해온 압박과 설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은 아이게우스를 외려 조심스럽게 만들었던 듯싶다. 팔라스 측에서 아이게우스의 아이가 무사히 자라나도록 수수방관할 리 없었던 탓이다. 그는 먼 훗날에 있을 감격적 부자 상봉의 순간에 친자 확인의 중요한 징표로 사용될 칼 한 자루와 신발 한 켤레를 커다란 바위 밑에 감춰둔 다음 물건들을 숨겨놓은 장소를 오직 아이트라에게만 은밀히 귀띔해주었다. 이러한 사실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라는 당부를 곁들였음은 물론이다.


칼은 신화와 전설에 빈번히 등장하는 물품이다. 권력 내지 무력을 상징하는 이유에서다. 신발은 평범한 젊은이가 위대한 영웅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반드시 떠나야 하는 모험과 도전의 여행을 은유한다. 아이게우스는 자식이 언젠가 필요로 하게 될 도구와 수단을 미리 상속해준 셈이었다.


남들도 다 아는 정보는 정보로서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마련이다. 정보의 위력은 그에 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적으면 적을수록 높아진다. 테세우스를 둘러싼 출생의 비밀의 전모를 온전히 파악한 사람은 이제 아이트라뿐인 상황이 연출됐으므로 테세우스는 엄마의 정보력이 뒷받침된 아이로 태어나는 모양새를 띠게 되었다. 피테우스는 아이게우스가 남기고 간 증표에 대해선 전혀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피테우스는 테세우스의 교육을 콘니다스에게 맡겼다. 콘니다스는 테세우스의 가정교사 역할에만 머물지 않고 수행원 구실까지 겸했다. 나중에 아테네인들이 테세우스를 경배하는 축제를 벌이기 전날 콘니다스에게 별도의 제사를 올린 점을 보면 그는 테세우스의 성장과 성공에 상당한 기여를 한 인물로 추정된다.


당시의 그리스에는 성년에 도달한 젊은이들이 델포이 신전에 들러 머리카락을 깎아서 신에게 봉헌하는 유서 깊은 전통이 존재하였다. 테세우스는 특이하게도 앞머리만을 잘라 제단에 바쳤는데, 이것은 호전적 야만인으로 묘사돼온 아반테스 인들의 풍습을 흉내 낸 행동이었다. 앞머리를 자를 경우 싸움터에서 적군에게 머리채를 붙잡힐 위험성이 크게 줄어드는 부수적 효과가 있었다.


개혁은 지배적 관행과의 결별을 의미한다. 낡고 거추장스러운 고래의 습속을 미련 없이 던져버리고, 그리스인들로부터 오랫동안 멸시를 당해왔을 이민족 같이 앞머리를 과감하게 잘라버린 일은 테세우스가 앞으로의 공적인 삶에서 보여주게 될 개혁가적 면모를 함축적으로 예시하는 의미심장한 사건이었다.


중국의 전국시대 말기에 조나라 군주였던 무령왕은 병사들에게 말 타기와 활쏘기에 편리한 흉노족 방식의 군복을 입을 것을 명령하는 호복기사의 개혁을 단행하여 조나라를 기존의 진나라나 초나라에 맞설 수 있는 실력을 지닌 강대국으로 일거에 부상시켰다. 서양식 복장, 즉 양복의 도입과 채택은 일본을 단숨에 열강의 대열로 끌어올린 메이지 유신의 대표적 개혁조치들 가운데 하나였다. 테세우스의 자발적 단발령 역시 외양에 작은 변화를 줌으로써 더 크고 근본적 개혁으로 나아가려는 의지가 반영된 행위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