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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에 대한 단상

공희준 2015. 1. 10. 20:38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해 진보적 노선을 표방하는 새로운 정당을 창당할 것이라는 소문이 세간에 무성하다. 이러한 소문이 과연 실제로 현실화될지는 무명의 3류 작가에 불과한 나로서는 정확히 짚어낼 경로도, 수완도 없다.


그런데 정동영씨의 거취나 진로에 대해서 전연 무관심할 수가 없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정동영’이라는 이름 석 자는 내게는 늘 짠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던 까닭에서다. 아주 이따금씩 그를 칭찬할 때에도 나는 가슴이 짠했고, 거의 매일 그를 비판할 적에도 역시 내 마음은 짠해졌다. 그러한 짠함에 더하여 집에 있는 노트북 컴퓨터로는 자판이 불편해 긴 글을 쓰기가 곤란한지라 그에 관한 생각을 두서없이 잠시 피력해보련다.


나는 정동영씨가 차기 총선에서 전주에서 출마하기를 바란다. 그가 전주에서 입후보해서 싸워야 할 대상은 현재의 제1야당에서 공천을 받고 등장할 경쟁 후보자뿐만이 아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정치인과 검투사를 구분하지 못해온 한국 주류 진보의 천박한 발상과 저렴한 안목도 그가 반드시 물리쳐야만 할 대적大敵이라고 하겠다.


참여정부의 출현 이래로 이른바 진보개혁세력이라고 불리는 진영에서는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동네에 출마해서 떨어지는 것이 마치 대단한 정치적 쾌거인 양 치부되어왔다. 한마디로 낙선한 정치인이 가장 훌륭한 정치인으로 떠받들어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종류의 변태적 관념은 미국 KKK단 같은 곳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광범위하게 맹위를 떨쳐온 바 있다. KKK단의 인종차별주의자들은 말한다. “죽은 흑인이 가장 좋은 흑인이다”라고.


정동영씨는 정치를 싸구려 활극영화에서 흔히 묘사되곤 하는 도장 깨기의 연장선쯤에 자리매김시킴으로써 전도유망한 정치인들을 잠깐 쓰고 버리는 일회용 소모품으로 끊임없이 만들어온, 한겨레신문 정치부로 대표되는 주류진보의 무책임하고 엽기적인 한탕주의에 경종을 울리는 의미에서라도 당선 가능성이 높은 지역구에 꼭 출마해야만 한다.


단적인 사례로 미국 진보정치의 거두였던 민주당의 에드워드 케네디는 케네디 가문이라면 말뚝을 꽂아놔도 당선되는 지역에서 상원의원으로 계속 선출되었다. 그럼에도 공화당의 아성일 비버리힐즈에 나가 장렬히 전사하라는 터무니없는 압력에 그가 시달렸다는 소리를 내가 무식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듣지 못했다.


야당 정치인들, 구체적으로는 호남 정치인들을 죽을 곳으로 내몰아 더 이상의 성장과 발전을 원천봉쇄한 다음, 그들이 산산이 부서지면서 남긴 잔해를 비옥한 거름 삼아 자기들은 편하게 정치를 하는 자들에게 그와 같은 도덕적 해이(실은 도둑놈 심보)가 더는 먹히지 않을 것이란 점을 분명하게 알리는 데에는 정동영씨가 2016년에 전주에서 출사표를 던지는 일만큼 효과만점의 확실한 방법도 찾아내기 어려우리라. 그가 떠난 강남의 물 좋은 지역구는 강남좌파의 기린아라고 할 어느 세계적인 법학자에게 물려주면 될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