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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경제가 살아야

공희준 2013. 12. 19. 13:02

결혼을 했다. 남들 다 하는 결혼을 한 일을 가지고 뜬금없이 웬 호들갑이냐고 면박을 주실 분들도 당연히 있겠으나 나에게나, 아내에게나 너무나 각별하면서도 뜻 깊은 결혼이었다. 이러한 표현이 전연 수식이 아님을 증명하는 차원에서 주변에 청첩장을 돌리는 와중에 대학교 동기와 나눈 전화통화의 내용을 잠깐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나 : 나 장가간다.

H : 축하한다. 그런데 그날 전후해 우리 아들이 군대에 갈 거 같아서 네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 : 네 아들이 제대할 때쯤에 나는 아들 돌잔치 치르고 있을 것 같다.


그렇다. 나는 결혼을 참 늦게 했다. 우리나라의 평균 초혼 연령을 끌어올리는 데 본의 아니게 혁혁한 공을 세운 셈이다. 그나마 다행인 구석은 아내를 알게 된 이후 가히 광속으로 결혼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결혼을 전제하지 않는 이성간의 교제는 결코 하지 않는다는 나의 상당히 초보수적이고도 극우적인 연애관이 필시 톡톡히 작용한 탓이리라. “남들은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하지만, 나는 사랑하기 위해서 결혼한다”는 내 독특한 인생철학에 알고도 모른 척 속아 넘어가준 아내에게 이 자리를 빌려 세 단어를 전해주고 싶다. 사랑, 존경, 그리고 감사.


나처럼 결혼이 늦은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내 결혼이 많이 늦어진 결정적 까닭은 바로 이것이었다. 경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돈이 문제였던 것이다. 3포 세대라는 신조어를 들어보셨는가? 굳이 의미를 풀어 헤치자면 연애와 결혼과 출산이라는 아주 중요하고 필수적인 인륜지대사를 원천적으로 포기한 현재의 젊은 세대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그 삭막하고 냉소적 용어가 등장하기 훨씬 오래전에 나는 이 3포 세대의 대열에 자발적으로 합류했었다. 당장의 경제력이 아니라 남자의 됨됨이와 장기적 발전을 중요시한다는, 요즘 여성들에게는 발견하기가 매우 어려운 당찬 소신을 지닌 여인을 주제에 걸맞지 않게 운 좋게 만난 덕분에 그 대열에서 행복하게 낙오했지만, 솔직히 얘기해 내 스스로 골백번을 헤아리고 복기해봐도 내 결혼은 운의 소산일 뿐, 능력의 선물은 아니었다.


그런데 결혼식장에서 신랑 자격으로 하객을 맞이하면서 새삼스럽게 발견한 사실은 결혼이 생각만큼 늦은 건 아니라는 점이었다. 나는 내 결혼이 상대적으로도, 절대적으로도 늦었다고 여겼다. 허나 혼인을 축하하려고 식장에 들른 하객들 중에서는 이런저런 사연과 이유로 미혼이거나 비혼인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분들의 모습을 통해 내 결혼이 단지 상대적으로만 늦었을 따름이라는 위안과 깨달음을 얻었다.


경제가 영어로는 이코노미(Economy)란 것쯤은 이제는 지식을 벗어나 상식의 영역에 속한다. 그런 이코노미의 어원이 고대 그리스어인 오이코노미코스(Oikonomikos)게 가 닿아있음을 아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은 오이코노미코스가 가계 또는 가정관리쯤으로 번역된다는 데 있다. 한마디로 어떠한 경제체제든 수많은 가정경제, 곧 가계로 구성됨을 의미심장하게도 함축한다고 하겠다.


지구촌의 여러 나라들이 저출산 고령화로 신음하는 중이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인류 역사상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빠른 속도로 출산율의 저하와 인구의 노령화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으며, 이 결과 성장 잠재력의 지속적 하락이 우려되는 심각한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오래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강제로 억누르려는 일은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바람직하지도 않다. 따라서 답은 자명해진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도록 해야만 한다. 물론 여성해방운동이 맹위를 떨치기 시작한 20세기 중후반기를 거치면서 다양한 가족의 형식이 출현하고 있음을 나 역시도 부정하지는 않으련다. 그러나 한 남자와 한 여자로 이뤄지는 우리에게 익숙한 전통적 가정형태가 여전히 가족문화의 중핵을 차지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더 많은 혼인이 더 많은 아이로 이어질 것임은 허망할 만큼 뻔한 결론일 게다.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무수한 비책들이 백가쟁명 식으로 쏟아지고 있다. 한데 이처럼 우후죽순격으로 속출하는 대책들은 대개가 지나치게 거시적이고 차가운 느낌을 준다. 일반화의 오류를 무릅쓰고 평가하자면 나는 결혼을 하면서 태어나서 가장 많은 소비를 해봤다. 나름대로 경제 활성화에 기여했다고나 할까. 아무리 아끼고 허리띠를 졸라매도 결혼을 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지출이었다. 결혼 후 무엇을 먹고 살 것인지 생각하면 막막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결혼을 하면서 이전에는 겪지 못한 경제에 대한 열정, 쉽게 이야기하자면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다는 의무감을 만시지탄으로 절감하고 있다.


경제가 나아져야 국민들이 결혼을 많이 한다면, 역으로 경제가 좋아지게 하기 위해서라도 미혼 남녀들이 사랑하는 연인과, 마음이 맞는 이성과 용기 있게 결혼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을 정부에서 제대로 체계적으로 써봤으면 좋겠다. 돈이 잘 돌려면 사람들이 지갑을 열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얇은 지갑이나마 언제든 화끈하게 여는 것이 인간 본연의 심리임을 꿰뚫어볼 수 있는 혜안이 듬뿍 담긴 섬세하면서도 따뜻한 경제정책을 우리 국민은 언제쯤 실컷 구경할 수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