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타르크 영웅전

‘플루타르크 영웅전’ 로물루스 편 (상)

공희준 2013. 10. 27. 19:00

● 날   짜 : 2013년 10월 9일(수) 오후 8시

장   소 : 북촌 경국학당

참석자 : 공희준, 김윤, 박경범, 박동원, 임채완, 장경천, 최선희 총 7명

기록자 : 박동원


공희준 : 오늘은 제가 임채완님의 말씀부터 먼저 듣고 싶습니다. 임채완님께서 제게 개인적으로 미다스 왕에 대한 매우 재미있는 해석을 해주셨니다. 그 해석을 지금 다시 한번 들려주십시오.


임채완 : 그다지 재미난 해석은 아니고……. 제가 지난번에 ‘플루타르크 영웅전’ 독서 모임을 기록한 내용을 읽었는데 미궁을 경제불황에 비유한 것이 매우 재미있습니다. 대공황과 그에 따른 패닉의 직전에는 항상 호황과 버블이 있습니다. 즉 대공황이 있었다는 것은 그전에 경제적 붐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에서 재미있게 봤습니다.


공 : 임채완님이 숫기가 없으셔서 말씀을 짧게 하셨는데 제게는 그런 해석을 해주셨습니다. 미다스 왕이 손을 대는 것마다 금이 됐었데 그것은 경기가 매우 좋아서 무슨 일을 해도 대박이 터지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었답니다. 예컨대 경제공황 직전에는 경기가 매우 좋습니다. 치킨집을 해도, 빵집을 해도 대박이 납니다. 신입사원 연봉도 굉장히 셉니다. IMF 몇 년 전이었던 90년대 중반 상황인데 “신인 선수가 캐치볼만 해도 계약금이 1억이다”란 얘기가 프로야구계에 돌 정도였고, 제가 그때 다녔던 직장이 큰 회사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1주일에 한번씩 단란주점에서 회식을 할 정도였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돈이 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웃음) 하는 일마다 잘 되니 사람들이 돈을 막 썼던 거였는데, 그것이 한계가 드디어 닥친 겁니다. 바로 이런 상태가 미다스 왕의 손의 예라고 생각됩니다. 만일 제가 경제학을 아는 사람이라면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통해 경제사도 읽을 수 있다고 봅니다. 나중에 다루겠지만 리쿠르고스 왕이 딱 스탈린 같은 사람이더군요. 사유재산을 마구 몰수하는 것을 보니 스파르타가 마치 러시아 혁명 직후의 내전 당시의 전시공산주의(War Communism) 국가 같았습니다. 그럼 일단 테세우스 편은 마치도록 하고 로물루스 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로물루스는 아테네로 상징되는 그리스의 테세우스와 마찬가지로 로마라는 한 국가의 창건자입니다. 우리가 보통 서양의 고대를 그리스-로마시대라 하는데 이 시대의 영향이 얼마나 크던지 그레코로만형이란 레슬링 종목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상체만 공격해서 하는 레슬링인데, 이러한 규칙이 있었다는 것을 보아도 이 시대가 상당히 문명화된 시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p 68 “트로이가 망하자 배를 타고 도망한 사람들이 풍랑에 밀려 투스카니 해안까지 이르렀고 마침내 티베르 강 입구에 정착하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해안에 도착하자 그동안 바다 위에서 숱한 고생을 한 트로이의 여자들은 배를 태워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러한 제안을 낸 여자가 바로 로마라는 이름을 지닌 혈통 높은 귀부인이었다.]


공 : 로마사람들이 그리스에 대하여 열등감을 가졌고 그에 대한 보상심리로 자신들이 그리스에 못지않은 전통과 역사를 가진 트로이의 후예라고 자부했던 것 같습니다. 혹시 이 중에 로마여행 다녀오신 분계신가요? 제가 투스카니와 티베르강이 어떻게 생 지 몰라서요. (웃음)


김윤 : 로마의 한 강이 티베르 강이죠.


공 : 여기에 정착했다고 하는데 도착하자마자 여자들이 배를 다 태워버렸다고 합니다. 이게 어떤 의미일까요? 흔히 말하는 배수진일수도 있고, 월드컵 축구 본선 당시에 허정무 감독이 말한 파부침주일 수도 있는데, “우리는 더 이상 갈 데가 없다.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다”라는 단호한 결의를 보이기 위하여 선박을 불태운 것 같습니다.


 p 69 [이와 같은 많은 전설 중에서 가장 믿음직한 것은 로물루스가 이 도시를 창건하고 자기의 이름을 따서 지명을 로마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공 : 사실은 이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로물루스가 세운 도시니까 로마이겠죠.


박동원 : 제가 브리태니커 사전에서 본 내용입니다만, 로마의 신화나 전설에는 강한 공간성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여기 나온 것과는 반대로 로마의 설화와 전설들은 지명에 맞추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로마라는 지명이 존재할 경우 그 다음 로물루스란 사람의 전설을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플루타르크 영웅전 외의 로마에 대한 사서를 읽어보아도 폴리스, 민주주의, 아고라, 아크로폴리스, 파르테논 신전 등의 문화적 요소를 강조한 그리스의 예와는 대조적으로 로마의 창세기에서는 지리적인 것들을 많이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티베르 강이 흐르고 주위에 일곱 개의 작은 구릉들이 있는데 각 구릉에 어떤 유서 깊은 역사적 유래들이 있는가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합니다.


김 : 나도 많이 들어본 것 같습니다.


공 : 지리적 요소를 강조한 것을 보면 로마인들의 생각이 실용적인 것이었겠네요.


박동원 : 실용적이라 할 수 있겠죠. 그것이 토착적인 문화의 영향에서였는지, 개창자들의 의도에서였는지는 몰라도 거기에는 개국 초부터 상당한 공간성과 물질성이 존재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정신적 기반 하에 결국 로마의 건축물도 신전이 중심이 된 그리스와는 달리 원형경기장, 목욕탕 등의 실용적 건물이 중심이 된 것이죠.


김 : 상당히 공감이 가고 설득력이 있습니다.


공 : 전 처음 듣는 이야기이지만 잘 지적해주셨습니다. 사실 우리가 그리스-로마 신화라고는 하지만 거의 다 그리스 신화죠. 로마가 그리스보다 수백 년이 나중이니까 그만큼 그리스보다 인류의 문명이 개화해서 그렇게 됐다고 볼 수도 있겠죠. 그리스 신화를 보면 누구는 누구의 아들입네 하는 얘기가 많이 나오는 데 반해, 로마는 주로 땅 얘기부터 하죠. 가문보단 땅이 중요하단 얘기군요. 그리스는 족보, 로마는 등기부등본.


박경범 : 등기부등본이 더 중요해요. (일동 웃음)


공 : 또 다는 설이 있습니다.


[pp 69-70 “트로이의 여인 로마가 텔레마코스의 아들 라티누스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낳은 아들이 로물루스였다고 한다. 그러나 또 다른 설에 의하면 아이네아스와 라비니아의 딸 아이밀리아가 군신 마르스로 인하여 난 것이 로물루스라고 한다.]


공 : 여기서 중요한 점은 로마는 가능한 자신과 트로이를 연관시키려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로마인은 자신들이 트로이의 장군으로서 트로이가 목마를  앞세운 그리스 연합군에게 함락된 이후 로마로 망명해온 유장인 아니네아스의 직계후손이란 것을 강조했습니다.


박동원 : 물론 그것이 자신의 가문이 뼈대 있는 집안처럼 보이기 위한 족보의 조작이 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역사의 한 필연적 결과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점점 배에 익숙해지고, 부를 축적하고, 강력한 해군력을 가지게 된 그리스 인들이 트로이를 침략하게 되는데 전 이것이 일종의 세력전쟁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힘이 축적되어 결국은 외부로 발산하게 되고 패권전쟁을 일으킨 셈인데 마치 근대 유럽의 1차 세계대전을 연상시켜요. 일단 그리스가 트로이를 함락시키지만 이 전쟁은 결과적으로 실패였던 것 같습니다. 원정에 참가했던 남자들의 귀환이 늦어지거나 어려워짐에 따라 그리스 도시국가의 기반이 무너져 이때 해체된 폴리스들이 많았습니다.


김 : 그게 그리스 역사에서 암흑시기에 해당하는 부분이죠.


박동원 : 결국 이때 많은 부족들의 이주와 정착이 이루어졌습니다. 아마 이 와중에 사람들이 로마로 까지 이주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공 : 주제와 상관없이 말씀드리자면 트로이 전쟁은 무역분쟁 때문에 비롯된 전쟁이었다고 합니다. 트로이는 에게 해에서 흑해로 가는 주요 해협에 위치한 도시로서, 지금의 얄타 반도를 비롯한 흑해 연안 일대가 스키타이 문명의 중심지로 보이는데 그곳으로부터 스키타이의 철기가 그리스로 넘어왔다고 여겨집니다. 여담으로 첨언하자면 고대의 지중해가 현재의 지중해보다 더 열린 바다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서해가 막혀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원래 서해가 열려 있을 때 동아시아가 번영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중해도 고대에는 이집트와 이탈리아가 같은 경제권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유렵과 북아프리카가 종교로써 별개의 영역이 돼버린 것이 천수백 년이 됩니다. 이것이 유럽의 딜레마가 될 수 있는 거죠.


임 : 18세기 영국의 상인들은 자식들을 17~18세까지 레판토에 살게 했답니다. 당시 그곳은 많은 사람들이 모인 국제적 지역이라서 여러 외국어와 상술 등을 배울 수 있어서였죠.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경제의 중심이 대서양으로 옮겨간 이후 쇠퇴하였던 것이죠.


공 : 저는 만일 아시아와 유럽이 경쟁하게 된다면 서해 내지는 동지나해가 먼저 열리느냐, 아니면 지중해가 먼저 열리느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될 수 있다고 봅니다. 만일 아시아에서 정말 난 놈이 하나 나온다면 그건 서해를 다시 여는 인물이 될 겁니. 단적으로, 현재 우리나라는 한강, 임진강, 예성강이 막혀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만일 템스강이 막혀 있다면 그게 영국일 수 있겠습니까? 라인강 하구가 막혀 있다면 오늘의 독일과 서유럽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우리가 가진 가능성의 절반 이상을 상실하고 있다고 봐야 하는 거죠. 여기까지 온 것 만해도 대단한 겁니다.


박 : 해운을 중시하시는 관점이시죠? 그런데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도 이를 중시했는데….


공 : 이명박 정부는 해운이 아니라 조선산업의 특정 분야를 중시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임 : 조선소 경기도 실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공 : 별로 안 좋았어요? 도대체 잘한 게 뭐야? 참고로 더 말씀드리면 브로델이 지은 『지중해의 기억』이란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을 읽으면 우리가 이 문제를 더 명쾌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로물루스와 그 주변 인물들은 지중해가 열려있을 때, 북아프리카와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가 하나의 생활권에 있을 때 활약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가 잘 안될 수 있죠. 그리스 신화에서는 아테나와 아폴로가 많이 등장하는 데 반해 로마에서는 군신 마르스가 자주 나옵니다. 스파르타라는 나라가 작은 도시 차원의 군국주의를 실현했다면, 로마는 더욱 커다란 국가 단위에서 Militarism을 실천한 것이죠. 결국 그리스를 대표하는 신이 지혜의 여신 아테나였다면, 로마를 대표하는 신은 군신 마르스였다는 것입니다.


박 : 그런데 난 그리스가 몰락하고 로마가 대두하게 된 과정을 자세히 배운 적이 없어요.


공 : 그건 서양사를 전공하신 김윤 선배님께서 설명해주시죠.


김 : 간결하게 설명하겠습니다. 그리스의 패권을 맨 처음 잡은 것이 아테네입니다. 페리클레스 시대에 전성기를 구가하던 아테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에게 져서 패권을 상실하죠. 이 와중에 테베가 일시적으로 패권을 잡기도 하지만 결국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가 그리스를 장악하는데, 이때 커다란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납니다. 페르시아로 동방원정을 떠나게 되면서 폴리스가 아닌 제국체제를 지향하게 되는 것이죠. 그것은 로마사에서 카이사르를 기점으로 하여 공화정에서 제국체제로 넘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알렉산더 사후 그의 부하 장군들에 의해서 제국은 4분할됩니다. 그중에 하나가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인데 이 후예가 바로 클레오파트라입니다. 그러다가 이집트를 로마가 정복하자 이때 그리스의 문화가 로마로 이식되어 신화도 그리스 신화가 다시 로마 버전으로 재탄생됩니다.


그리고 예수가 로마에 등장한 후 바울이 실질적인 기독교의 역사를 열고,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함에 따라 로마가 기독교에 먹힙니다. 로마의 수도가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지면서 동로마의 기독교는 그리스 문화의 영향으로 로마 가톨릭과 차별화된 그리스 정교, 즉 Orthodox로 불립니다. 이것이 오늘날 동서유럽 문화의 차이를 가지고 오죠. 러시아의 키릴 문자도 그리스 문자에 기원을 둡니다.


박동원 : 참 재미있는 것이 김윤님께서 말씀하셨다시피 바울이 바로 실질적인 기독교의 개창자라는 것이죠. 바울이 배를 타고 유대 지방에서 로마로 건너가는데, 이 배를 흔히 ‘문명을 실어 나른 배’라고 부릅니다. 로마는 건국 초부터 공간성이 매우 강조된 국가였습니다. 결국 로마의 공간성에 기반을 두고 기독교가 바울에 의해서 세계종교로 발전해나갔다고 하겠습니다.


김 : 맞습니다.


공 : 폴리스로 대표되는 그리스의 성격은 ‘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로마는 이 점들을 연결한 네트워크적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겠지요. 기독교도 이 네트워크를 따라 쉽게 전파될 수 있었는데, 결국 로마란 하드웨어를 가장 잘 이용한 것이 기독교라는 소프트웨어였습니다. 그런데 히틀러가 유대인을 박해할 때 바울을 표적 삼았다고 합니다. 기독교와 유대인을 분리시키는 과정에서 바울을 공략했던 것입니다.


박동원 : 기독교 교리논쟁에서 중요한 화두 중의 하나가 바울이 다마스쿠스로 가는 도중에 일시적으로 눈이 멀었다가 회심을 하였을 때 과연 그것이 ‘계시이냐 상상이냐?’입니다. 여기서 히틀러의 관점은 뭐였을까요?


공 : Imagination, 즉 상상이었다는 주장이었죠.


박동원 : 히틀러는 바울이 상상을 계시라고 거짓말했다는 관점이었군요.


공 : Orthodox 말씀을 하셨는데, 유럽대륙에서 현실 사회주의가 확장되었던 범위는 그리스 정교권에 거의 한정되었습니다. 스탈린과 트로츠키의 권력쟁투도 누가 정통이냐? 즉 Orthodox의 문제였던 것이죠. 거기서 이단으로 낙인찍혔던 트로츠키는 완전히 작살이 났죠. 플루타르크도 그리스와 로마 사이의 경계인일 수 있습니다. 책의 목차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리스와 로마의 인물이 번갈아 나오며 절묘한 줄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지배 하에서도 로마의 지배를 인정하지 않는 그리스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리스 출신으로써 로마에서 활동한 플루타르크의 경우에는 로마의 지배권을 인정하고 그리스와 로마의 융합을 꾀했던 흔적이 역력합니다. 그럼 다시 텍스트로 돌아와서…….

 

[p. 73 라틴 어에서 루포이라는 단어는 늑대를 일컬을 뿐만 아니라 몸가짐이 헤픈 여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쌍둥이를 기른 파우스툴루스의 아내가 바로 그런 여자였던 것이다.]


공 : 제가 여기서 어떤 느낌을 받았나 하면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사생아가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테세우스와 마찬가지로 한미한 집안의 출신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죠. 저는 여기서 백제의 온조와 비류를 떠올려보았습니다. 이 둘도 로물루스 형제처럼 한사람은 흥하고 한 사람은 아주 허망하게 죽습니다. 레무스는 비류처럼 도읍을 잘못 정했다가 죽는 경우인데, 저는 두 사람의 정치철학에 차이가 있었다고 봅니다. 로물루스가 평지에 성을 쌓았다는 것은 로마란 사회의 기반을 더욱 확고히 한 후 확장을 하자는 입장이었던 반면에, 레무스는 좀 더 팽창지향적이었던 사람 같습니다. 이는 스탈린과 트로츠키의 경우와도 유사한데, 스탈린은 소련이란 나라를 공고히 한 후 세계혁명으로 나아가자는 입장이었고, 트로츠키는 이를 부르주아 반동으로 간주하고 직접적인 세계혁명을 주장했었죠. 그러므로 전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형제였는지조차 의문스럽습니다. 로물루스가 동생이 아닌 레무스를 그로 대표되는 세력을 포용하기 위해 동생으로 조작하였다고 봅니다. 이는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기 위해 내선일체를 내세웠던 사례와 유사해 보입니다.


박경범 : 금나라가 송나라를 지배하기 위해 형제국을 주장하였던 것과도 비슷하네요.


공 : 다시 본문을 읽어나가겠습니다.


[p. 75 아주 어렸을 때부터 쌍둥이들은 건장한 신체와 아름다움으로 뛰어난 자질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자라면서 더욱더 불굴의 용기와 남자다운 면모를 풍겼다. 또한 위험한 모험은 모두 시도하여 담대한 배짱을 보이기도 했다.]


공 : 한마디로 배짱이 있었다는 겁니다. 어떠한 국가나 회사에서나 모든 창업자들은 공통적으로 배짱이 있습니다. 어떠한 문제가 생기면 자신이 가장먼저 적극적으로 그것을 해결합니다. 이것이 바로 창업자의 자질이죠. 예를 들면 정주영 전 회장은 나이가 일흔이 됐어도 서산간척지에 직접 가서 유조선 공법을 개발해 공사를 성공시켰지 않습니까? 그러나 여기에서 두 사람의 차이가 보입니다. 로물루스가 레무스보다 더 정치가적 지략을 보였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구체적 설명은 나오지 않습니다. 과연 어떤 차이가 있으며 정치가적 지혜란 어떤 것일까요? 최선희님께서 한 번 말씀해 보세요.


최 : 독수리 숫자 속이는 거요?


공 : (웃음) 글쎄요. 그건 좀 다른 얘기 같은데요? 


최 : 잔머리 쓰 것이요. 독수리 숫자를 속여서 레무스의 기를 꺾은 거잖아요.


공 : 임채완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임 : 정치가의 지혜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정견을 일관되게 밀고 나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공 : 김윤 선배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 여기에서의 맥락에서는 “판단력을 보다 잘 이용했으며 정치적인 면에서 두각을 나타낸 듯 했다.”고 번역되어 있어요.


박동원 : 공희준님은 영웅은 대중성이 강하다고 하는 맥락에서 말씀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최 : ‘민중에 대한 동원력’이라고도 불 수도 있습니다.


박동원 : 그렇죠. 누미토르와 처음 접촉한 사람은 로물루스가 아닌 레무스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누미토르와 아물리우스 사이에서 겁을 먹고 긴장을 했었던 것처럼 보이고, 여기에 반해 로물루스는 위기를 감지하고 최선희님 말씀대로 군중을 동원하여 아물리우스를 압박해 들어갔습니다. 이때 로물루스는 판세를 읽을 독해력도 있었고, 대중을 선동하는 포퓰리스트적 면모도 있었습니다. 결정적 시기에 위기를 기회로 돌리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반대로 레무스는 한마디로 쫄았던 겁니다. 


공 : 비유하자면 레무스는 회의실에 있을 때 로물루스는 보라매공원에서 집회 한번 해가지고 정국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재주가 있었다는 거군요.


김 : 핵심은 사람을 획득한다는 거예요. 그것이 정치적 능력의 요체인 거죠.


박:  로물루스가 더 담대하네요.


공 : 레무스가 정치인들끼리 모여서 담판을 모색했다면, 로물루스는 DJ처럼 보라매공원에 백만 군중을 모아놓는 군중동원의 능력이 있었다는 겁니다.


김 : 여기서는 “두각을 나타냈다”는 표현이 있으므로 카리스마가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일상적인 일에서든, 사람들과의 투쟁에서였든 자기는 명령하기 위해서 태어난 인간처럼 행동하였다는 거죠. 지략도 있고 용기도 있었다는 뜻입니다.


박동원 : 우리나라에서 태어났으면 출세 못했겠네요. (일동 웃음)


최 : 왜요?


박동원 : 우리나라에선 튀는 놈은 죽잖아요. (일동 웃음)


공 : 잘 튀어나오면 삽니다. (일동 웃음)


[p. 75 “이웃을 다루는 데 있어서나 가축을 먹이고 사냥을 하는 데 있어서나 로물루스는 다는 사람 밑에서 복종하기보다는 남을 지배할 운명을 타고났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공 : 한마디로 환자예요. 모든 영웅은 환자입니다. “나는 남을 지배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이거 미친놈 아닙니까? 하지만 역설적인 것 지금 민주당이 지리멸렬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걸 면하려면 미친놈이 나타나야 하는데 민주당에는 그런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오히려 새누리당에 더 많아요. 대표적인 것이 박근혜 아닙니까? 박근혜는 자신이 나라를 구할 운명을 타고 났다고 믿는 것 같아요.


김 : 실제 우리 역사에서 이승만, 박정희 그리고 김대중이 그런 사람이고, 노무현은 조금은 아류이겠지요.


박 : 김윤님이 더 잘 아시겠지만 사마천의 『사기』의 「오기열전」을 보면 오기가 집안의 돈을 탕진하면서 벼슬을 사려고 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비웃자 자신을 비웃었던 30여 명을 전부 죽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완전히 정신병자예요. 요즘 기준으로 보면 사이코패스예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역사적으로 큰일을 했어요.


공 : 지금 우리나라에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정말 찾기 힘듭니다. 스티브 잡스도 어찌 보면 환자인데, 그 후계자가 팀 쿡입니다. 팀 쿡은 잡스와는 달리 그냥 유능한 CEO일 뿐입니다. 정주영, 이병철의 2세, 3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주영, 이병철이 비록 나쁜 짓은 많이 했지만 그 사람들은 기업보국과 수출입국이 자신의 사명이란 나름의 소명의식이 있었지만 지금의 기업 총수들은 매출액과 수익이 얼마라는 통계치 밖에 모르는 잔챙이들로 보입니다.


박동원 : 그런데 그 책임이 전임자에게도 있지 않았을까요? 만일 팀 쿡이 스티브 잡스같이 해보려고 시도했다면 스티브 잡스가 가만히 놔뒀을까요? 저는 잡스 자신이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공 : 그래서 저는 영웅은 남의 밑에서 기어야 할 때는 확실히 길 줄 알았던 놈들이라고 봅니다. 등소평이 그랬고, 테세우스나 로물루스도 그랬습니다.


임 : 어떤 부분에서 그랬다는 거죠?


공 : 처음에 고개 숙이고 들어갔잖습니까? “나는 당신의 손자나 아들입니다” 하고요. 고대에서는 당신 아들이라는 건 내가 당신 밑이라는 겁니다. ‘l am your father.’가 아니라 ‘I am your son.’인 거죠. 영웅이란 것은 비굴할 때는 한없이 비굴한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건 객기입니다. 모택동도 힘이 부족할 땐 장개석 앞에서 꿇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진압당했겠죠. 그건 등소평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박 : 등소평은 정말 좋은 예로 보입니다. 모택동도 작은 거인이라며 경계했을 정도니까. 일본에서 예를 들자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있겠군요.


[p. 75 쌍둥이들은 정직한 오락을 즐겼으며 교양을 쌓았다. 그리고 게으름이나 나태, 방종 따위는 조금도 가치 있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차라리 사냥이나 달리기, 도적 물리치기, 도둑잡기 등에 몰두하였고 억울하게 억압받은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이러한 행동으로 쌍둥이들은 유명해져 갔다.]


공 : 두 형제가 어떠한 방법과 형식과 절차를 통해서 자신들의 명성을 높이고 세력을 규합했는지가 나오는 대목입니다.


박동원 : 전 이거 읽으니까 갑자기 또 궁예 생각이 나네요. 공통점은 처음엔 이렇게 모범적으로 잘하다가 나중엔 오만해지고 폭군이 됐다는 점이고요.


[p. 79 이제 아물리우스는 죽고 모든 문제들이 조용하게 처리되었다. 두 형제는 더 이상 평민으로 알바에 머무르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할아버지가 살아 계시는 동안에 왕위를 물려받고 싶지도 않았다.]


공 : 만일 두 사람이 알바에 계속 머물렀다면 왕위를 물려받아 그저그런 소국가의 그저그런 통치자로 생을 마쳤을 것입니다. 이 두 사람 같이 모든 창업을 이룬 영웅들은 공통적으로 자기가 있던 곳에서 떠나야 합니다. 우리가 아까 알렉산더 대왕의 이야기도 했습니다만, 알렉산더가 페르시아 원정을 떠났다는 것은 마케도니아를 떠났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살아서 다시 마케도니아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지금 우리사회가 영웅이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가 현재 있는 곳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떠나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편안히 앉아서 먹고사는 지대추구형삶을 꿈꿉니다.


박경범 : 한국사람이 한국을 떠나야 한다는 얘기가 되는 건가요?


공 : 물리적인 떠남이 될 수도 있고, 자신의 영혼이 떠나는 것일 수도 있죠.


임 : 자신의 기득권을 놓고 떠난다는 얘기겠지요.


박경범 : 제가 한국에서 하도 답답해서 중국에서 몇 년간 일을 해보기도 했는데 잘 안 되서 결국 한국의 문화와 어문정책 등등이 내게 안 맞고 답답하더라도 한국에서 소명을 감당하고 살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김 : 그건 조건이 다르죠. 이건 예를 들어 한국의 대통령이 되더라도 그걸 다 버리고 떠난 경우죠.


공 : 알바는 매우 작은 왕국이었습니다. 옛날에 혹시 「태조 왕건」보셨나요? 거기서 상주의 아자개가 견훤의 아버지인데 상주가 딱 알바와 같은 곳이죠. 일베충들이 아자개를 패러디한 동영상을 보았는데 거기서 “그냥 가만~있으면 되요”라고 나옵니다. 결국 아자개는 상주에서 가만있다 끝났거든요. 하지만 아들인 견훤은 상주를 박차고 나와 후백제를 건국하지 않습니까? 떠난다는 것은 곧 한 국가의 탄생인 것입니다. 로물루스 형제가 늑대의 젖을 먹었다는 것이 생물학적 탄생이었다면, 알바를 떠났다는 것은 정치적 탄생을 의미합니다. 생물학적 탄생은 어머니의 자궁을 떠난 것을 의미하는데, 어머니의 자궁이 매우 아늑하고 편하더라도 떠나지 않으면 새로운 탄생은 없는 것이죠.


박동원 : 마침 타이밍이 딱 맞았네요. 로물루스 형제의 생모 레아의 자궁을 말씀하신 셈인데 책에 생부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습니다. 원래 아물리우스가 평생 동정녀로 살아야 하는 신녀로 만들려고 했지만 뒤늦게 임신한 사실이 들통이 났던 것입니다. 큰 사건이 난 셈인데 아무 언급도 없는 것이 이상해요. 가령 집안사람과 사통을 했다던가 하는 이야기라도 나와야 자연스러울 텐데 말이어요.


공 : 그건 아무래도 어머니가 엔조이한 것 같아요. (웃음)


박동원 : 엔조이한 여자를 신녀로 앉혔기 때문에 아물리우스가 천벌을 받은 셈이군요. (웃음)


김: 보편적으로 창업의 신화에서는 창업자는 아버지를 죽입니다. 최초의 창업자는 가장 위대한 성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아버지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는 것이죠.


공 : 심지어 공자조차도 아버지가 큰 의미가 없어요.


김 : 공자의 고사에서 보더라도 중국 사람들이 상당히 정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급 군인이었던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과 안징제라는 어머니 사이에 무려 40-50세의 나이차가 있었습니다. 야합(野合)해서 낳은 자식이란 표현을 쓰는데 노골적으로 집이 아닌 들판에서 했다는 겁니다. 중국 사람들 참 솔직합니다. (웃음)


[p. 79 “자신들은 스스로 살아가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어린 시절에 자랐던 장소에 도시를 세우기로 하였다. 이것이야말로 쌍둥이가 떠나는 가장 그럴듯한 이유처럼 보였다.]


공 : 이것은 독립입니다. 고구려의 주몽도 부여의 금와왕으로부터, 백제의 온조와 비류도 고구려로부터 독립을 하였습니다. 창업이란 것이 꼭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을 뜻하지만은 않습니다. 자신의 기득권을 과감히 포기하고 이미 습득한 노하우와 지식만으로 새로운 것을 만드는 거죠. 이것이 바로 창조적 계승, 토인비가 말한 Mimesis라고도 볼 수 있죠. 물론 계승보다는 창조에 더 방점이 들어가겠지만 말입니다. 저는 참 부럽습니다. 우리는 떠나질 못해요. 지금 민주당은 분명히 누군가는 당을 떠나서 새로운 곳에 정착을 해야 하는데 언제나 붙어만 있는 겁니다. 어제도 손학규 대표가 와서 또 통합하자는 소리를  늘어놓고 있던데,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것은 Integration이 아니라 Independence입니다.


박경범 : 조금 전과 같은 맥락에서 말한다면 민주당 내의 중진 중에 누군가가 떠나서 새 판을 짜야 하는 것이겠죠.


공 : 그렇죠. 민주당을 떠남으로써 가장 손해를 볼 사람이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박경범 : 문제는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조순형 씨처럼 실패한 사람들이 떠난다는 거겠죠. 새판을 짜던지 해야 하는데 그냥 새누리로 가버리거든요.


공 : 스스로 사장이 될 생각은 안 하고 다들 남들 밑에서 이사만 하려고 합니다.


[pp. 79-80 사실 도시를 세우는 일이 꼭 필요하기도 하였다. 쌍둥이 주위로 모여든 수많은 노예들과 도망자들은 이제 뿔뿔이 흩어져 세력을 잃어버리거나, 아니면 형제와 함께 다른 곳에서 살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공 : 창업이란 데에는 이와 같이 사전에 면밀한 시장조사가 있어야 합니다. 맨땅에 세운 것이 아니죠. 추종자들이 이미 있었던 거죠.


박경범: 옛날에는 빈 땅이 많아서 영웅들과 이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떠나서 새로운 나라를 세울 수가 있었지만 이제 지구에는 무주지가 없어요. 떠날 수 있는 영웅이 나오기 어려운 현실도 있는 겁니다.


공 : 그래서 저는 미국처럼 뉴 프론티어가 나와야 된다고 보는 겁니다. 공간적 차원의 이동이 아닌 다른 차원의 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현대의 유목은 공간적 이동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비전을 찾는 것일 텐데, 바로 그것을 제시하는 자가 영웅이겠죠. 이때 영웅에게 필요한 것은 철저한 자기희생과 모범입니다. 안방에서 지시만 내려서는 안 되는 거죠. 전 이재용 보다는 이건희가 모범을 보였고, 이건희보다는 이병철이 모범을 보였다고 보는데, 문제는 갈수록 관리자형, 붙박이형 인간이 많아진다는 점입니다.


박경범 : 그건 회사 규모가 커져감에 따라 어쩔 수 없는 필연일 수도 있겠지요. 글머 크기를 줄여야 하나? (웃음)


[p. 80 알바의 시민들은 부녀자들을 괴롭힌 문제와 관련되어 도망자들을 시민의 일부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장난이나 희롱이 아니라, 필요에 의한 일이었다. 노예나 범법자들은 정당한 방법으로는 아내를 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강제로 납치해간 부녀자들에게 보통 사람들 이상으로 예의와 존중을 다하였다.]


공 : 저는 지금 우리 사회가 붕괴위기에 직면했다고 봅니다. 현재 우리나라 남자들 정말 결혼하기가 힘듭니다. 이 당시의 알바도 비슷한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알바에서 결혼하기 힘들었던 2등 시민들이 로물루스 형제를 믿고 떠났던 겁니다. 저는 우리나라에서도 2등, 3등 시민들이 기성질서에서 이탈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이민을 가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오히려 2등, 3등 시민들이 더 체제에 순응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삼성 공채 시험에 10만 묭이 몰려들고, 9급 공무원 시험의 경쟁률이 수천 대 일이 됩니다. 한국사회는 지금 로물루스 형제가 존재하지 않는 알바 같은 상황인 거죠. 답답합니다. 그래서 이 독서회의 취지도 바로 ‘우리도 2, 3등 시민이 믿고 따를 수 있는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가져보자.’는 것입니다.


박동원 : 농담 삼아 말씀드리자면 2등, 3등 시민들이 혁명을 일으키려면 우리사회가 좀 더 가혹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까지 우리사회는 비교적 너그럽다는 뜻이죠.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호주의 사례가 생각났습니다. 영국에서 사회적 잉여를 방출하던 곳이 북미였는데 미국이 독립하면서 호주로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호주사람들의 족보는 범죄자 족보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든 의문이 그런 범죄자들이 세운 나라가 용케도 선진국이 됐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알고 보니 그 당시 영국의 법이 굉장히 가혹했던 것을 알았습니다. 예를 들어 가난한 집 어린아이가 배가 고파 닭서리를 하다 잡혀도 징역 7년을 때립니다. 그런데 막상 7년간 수용하려니 감옥이 모자라서 호주로 보내버리는 것이죠. 이렇듯 호주의 이민 1세들은 대부분 가벼운 경범죄자들이었던 겁니다. 그들을 너무 색안경 끼고 바라볼 필요가 없는 것이죠.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실수를 범한 정도였으니까요. 결론적으로 저는 우리나라가 아직 혁명이 일어나기에는 사회가 너그럽다는 것입니다.


박경범 : 우리가 어렸을 때 순정만화가 황민하 씨의 『굿바이 미스터 블랙』 이라는 작품이 있었는데, 작품의 주인공이 너무나 뛰어나다 보니 모함을 받아서 호주로 쫓겨가는 내용이 나옵니다. 너무 뛰어나도 호주로 가는 거예요. (웃음)


[p. 80 “새로운 도시의 기반을 닦은 지 오래 지나지 않아, 쌍둥이 형제는 모든 도망자들을 위한 피난처 성소를 개방하였다. 그리고  그 곳을 아실레우스 신의 신전이라고 불렀다. 형제는 모든 종류의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보호하며, 아무도 돌려보내지 않았다. 심지어 노예도 주인에게 보내지 않았고, 채무자를 채권자에게 넘기지 않았으며, 살인자도 판사의 손에 인도하지 않았다. 이곳은 거룩한 신탁의 명령에 의해서 특권을 부여받은 장소라고 선언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도시는 곧 성장하여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처음부터 이 도시에는 천 채가 넘는 집이 있었다고 한다.]


공 : 예일대 교수인 에이미 추아가 쓴 『제국의 미래』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의하면 모든 제국은 개방적이어야 지속가능하다고 합니다. 아메리칸 드림의 원류는 로만드림이며 동시에 아테니안 드림인 것입니다. 테세우스도 로물루스도 모두를 받아들이고, 일단 받아들인 사람에게는 철저한 방어막을 제공합니다. 미국도 그렇지 않습니까? 어느 나라에서나 전쟁이 나면 수단방법 안 가리고 자국민부터 대피시킵니다. 비록 이민으로 왔더라도 충성맹세와 함께 자국의 시민권을 가진 자에게는 무한한 보호막을 제공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볼 때는 기분 나쁠 정도이죠. 그야말로 ‘제국’입니다. 로마는 알바에서 쫓겨난 2~3등 시민이 모여서 만든 작은 나라였지만 이러한 정책에 차후 1,000년간 유지될 수 있는 제국의 비결이 있었던 것입니다.


김 : 첨언하자면 476년 서로마제국의 멸망을 기준으로 한다면 1,000년이지만, 동로마까지 포함한다면 2,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로마는 모든 유럽인의 영원한 꿈인 것입니다. 불과 200여 년 전까지 존속했던 신성로마제국이 이를 증명하는데, 이는 관념적으로 로마 계승을 표방한 것입니다. 


공 : 고도의 개방성을 가졌다는 것은 그만한 실력을 갖추었다는 증거입니다. 타국에서 범죄자, 채무자 그리고 노예의 반환요청이 있었더라도 이걸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는 겁니다. 이미 상당한 군사력을 보유했다는 거겠죠. 다음은 최선희님이 좋아하시는 구절입니다. 로물루스가 독수리 수를 속인 대목이요. 거기에 대한 생각을 말씀해주세요.


최 : 제가 기록을 정리하다 보면 복습이 잘 됩니다. 그런데 지난번 테세우스 편을 다룰 때 박동원님께서 언급하신 내용입니다만, 테세우스의 친구인 페리토오스가 개(Dog)인 케르베루스에게 갈가리 찢어 죽임을 당하는 대목에서 죽은 그가 테세우스의 영향력 있는 책사가 아니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았을 때 레무스 역시 로물루스의 오른팔이 아니었을 까란 추측을 해봅니다. 알바를 떠나 로마를 건국하는 생각 자체가 레무스의 아이디어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도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는 이미 레무스가 필요 없는 존재가 됐을 수도 있는 것이지요. 이건 정도전이 이방원에게 한양 천도 후 숙청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죠. 그리고 독수리 숫자를 속이는 장면에서는 어떻게 이렇게 뻔뻔스런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하면, 테세우스나 로물루스나 너무 잔머리를 잘 굴린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윤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영웅이란 남들이 잘못하는 짓을 서슴없이 하는 인물이란 느낌도 듭니다.


공 : 회계부정을 자행한 것이죠.


김 : 좋게 말하면 비범한 것이고, 어쨌든 통상적인 인간은 아닌 거죠.


최 :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뻔뻔스런 언행과도 일맥상통합니다. 뇌구조가 보통사람과는 다른 것 같아요.


박동원 : 확실히 뇌구조가 다른 것이 독수리의 수효를 속인 것은 어찌 보면 매우 순진한 책략에 속합니다. 나중에 켈레르를 시켜서 자신을 15세까지 길러준 양아버지 파우스툴루스와 그의 형제 플리스티누스를 레무스와 함께 죽여 같이 매장합니다. 어떤 정치적 배후가 있었던 것인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p. 82 “레무스는 속임수를 알고서 몹시 기분이 상했다. 그리하여 로물루스가 성벽을 쌓기로 계획한 자리에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 땅을 파고 있을 때, 장난을 치면서 다른 사람들의 일을 방해하였다.]


공 : 이 과정에서 아마 무력충돌이 있었을 걸로 생각됩니다. 그래도 레무스가 왕인데 장난이나 치고 있었을 리가 없죠. 


[p. 82 그리고 레무스는 조소를 던지며 도랑 위를 뛰어넘어 다녔다. 어떤 사람들은 이때 로물루스가 그를 쳤다고도 하고 혹은 동료 중의 한 사람인 켈레르가 쳤다고도 한다. 마침내 레무스는 땅에 쓰러졌다. 이 격투에서 파우스툴루스와 그의 형제인 플리스티누스도 살해되고 말았다. 플리스티누스는 로물루스를 키우는 일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켈레르는 일이 이렇게 되자 재빨리 투스카니로 도망쳤다.]


공 : 이건 로물루스가 엄청난 권력의지를 가졌고, 자신의 권력을 반석 위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잔혹한 인간임을 나타냅니다. 반대파를 일거에 숙청해버린 거예요.


박동원 : 권력은 공유할 수 없다는 거군요.


공 : 또 한 가지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영웅은 착한 놈은 아니다”란 점입니다. ‘난놈’이지요. 중요한 것은 양아버지 플리스티누스는 레무스를 편들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다른 로물루스의 교활함은 이렇습니다.


[p. 82 “로물루스는 레무스와 두 명의 양아버지를 레모니아 산에 매장한 다음, 도시를 건설하는 일에 착수하였다.]


공 : 그냥 대충 암매장한 것이 아니라 매우 성대하게 장례를 치러줬다는 겁니다. 스탈린 대숙청의 시발점이 되었던 것이 1934년 당시 레닌그라드 당 중앙위원회 서기였던 세르게이 키로프(Kirov)가 스탈린의 사주로 암살되었던 사건입니다. 스탈린은 그를 죽인 후 마찬가지로 성대하게 장례를 지냈습니다. 자기 죽여 놓고 자기가 추모하는 거죠. 왜? 비록 레무스는 죽었지만 레무스를 따르던 휘하 세력을 자기 밑으로 포섭하기 위해서이지요. 당시 인민들도 레무스가 로물루스에 의해 제거됐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민중들은 갓 건국된 로마라는 국가가 당면해 있는 중대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로물루스의 도덕적 결함을 용인했던 것이죠.


박경범 : 그때의 사람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는 달랐을 겁니다. 그리고 하늘에 태양이 둘일 수 없다는 현실적 문제를 인식한 것이죠.


공 : 저는 당시 로마인 대부분이 평지에 성을 쌓고자 하는 로물루스의 정책을 지지했다고 봅니다.


최 : 아까 박동원님께서 어떤 정치적 암투가 두 형제 간에 있었을지에 대해 궁금해 하셨는데, 처음으로 의견이 갈리는 곳이 로마의 장소를 정할 때입니다. 여기에 수수께끼의 답이 있을 것 같습니다.


[p. 80 “로물루스는 로마 쿼드라타 혹은 스퀘어 로마라고 불리는 장소를 골라 그곳에 도시를 세우고자 하였다. 레무스는 아벤티네 산 위에 있는 평평한 땅을 정하였다. 그 곳은 자연이 만들어놓은 철벽요새였다.]


최 : 이와 같이 특별히 지형을 설명하였습니다. 성벽공사를 막상 시작하고 보니 로물루스 자신도 레무스가 처음 주장했던 지역이 애초부터 성벽을 쌓을 필요가 없는 천연의 요새임을 알게 됐고, 차츰 사람들의 불만을 사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 와중에 레무스의 비판도 집요하게 계속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레무스를 제거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김 : 상당히 설득력이 있고 공감이 가는 의견입니다.


박경범: 여러 소프트웨어적 갈등을 하드웨어적 관점으로 비교하였을 수 있겠죠.


공 : 최근 새로운 역사관이 대두하고 있는데,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헛된 국력낭비가 아닌 고대 이집트판 뉴딜정책이었다는 의견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로물루스가 성벽을 쌓음으로써 고용 창출을 도모했다고 봅니다.


김 : 도시의 입지를 정할 때는 아무래도 평지에 잡는 것이 접근성이 용이하여 경제적 풍요의 토대가 되었겠죠. 또 한편으로는 산 위에 정하면 방어가 용이했겠고요.


최 : 경제냐, 안보냐의 선택의 문제로 보입니다.


박동원 : 아! 저는 알겠습니다. 왜 산으로 가면 안 되는지. 조금만 있으면 사비니에서 여자를 훔쳐 와서 장가를 가야 하는데 산 위에 도읍을 정하면 누가 시집을 오겠어요. (웃음)


공 : 당대 인민의 입장에서 보았을 땐 평지가 생활하기에 편했을 겁니다. 로물루스가 대중적 감각이 강했다면, 레무스는 귀족적 취향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산 위에 높은 성 쌓고 사는 것은 귀족적 취향이었거든요. 귀족당과 평민당의 대립이었고, 결국 고대에도 폭넓은 민중의 지지를 획득한 인물이이 권력투쟁에서 승리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겠습니다.


최 : 도시문제가 나와서 생각났습니다만, 과거에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후 세종시 이전 문제에서 박근혜 씨와 각을 세웠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비록 공약으로 내걸었던 세종시 이전이었지만 현실적 감각에서 옮기는 데 회의적이었고, 박근혜는 원칙적으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며 완고히 버텼죠. 로물루스 형제와의 역사적 예로부터 본다면 두 사람 사이의 갈등도 매우 심각하였을 거라 생각됩니다. 옛날 같았으면 제거했을지도 모르겠어요.


공 : 방금 Logic 즉 논리의 문제가 나왔지만 영웅들을 보면 그들의 논법은 의외로 매우 단순합니다. 복잡한 논리는 하나도 없습니다. 처음 누미토르와 아물리우스에 접근한 것은 레무스였는데, 이때는 아마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논리가 필요하였을 것이고, 레무스가 이것을 잘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반대로 평민을 상대로 한 단순명쾌한 논리는 로물루스가 더 잘 세웠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도 두 사람의 차이가 명확히 드러나고, 또 한편으로는 창업 기에는 정교하고 복잡한 논리보다는 단순하고 명쾌한 논리를 가진 자가 더 세를 모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는 진보나 보수나, 정치든 경제든 그 논리와 논법이 너무 복잡하고 정교합니다. 지금은 어느 분야를 보아도 단순명쾌한 논리를 펴는 사람이 없어요. 논리의 구조가 점점 복잡해지는 이유는 지금 이 시대의 핵심적 과제, 중심적 가치를 포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로물루스는 당시의 핵심적 과제를 아주 잘 포착해낸 사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의 구호는 “평지에 세우고 편하게 살자” 이겁니다. 그래서 전 아무리 봐도 레무스가 민주당 체질이었던 것 같아요. (웃음) 다음에는 로물루스가 투스카니에서 사람을 불러와 제도를 정비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름이 나오지는 않지만, 아마 이 사람이 정도전 같은 역할을 담당한 인물이라고 생각됩니다.


[p. 82 투스카니에서 사람을 불러왔다. 그 사람은 로물루스에게 종교적인 제의와 준수해야 할 모든 의식에 관련한 성문화된 규칙이나 신성한 용법을 지도하여 주었다.]


공 : 로마가 성문법의 시초 아닙니까?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이 사람이 로마의 헌법을 제정해준 셈이죠. 이것을 그리스와의 차이로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스는 신화에서 머무르는 경향이 강한데, 예를 들어 나는 누구의 후손이란 식으로 정통성을 확보하는 데 반해 로마는 성문화된 규칙과 신성한 용법에서 정당성을 찾은 것입니다. 바로 이런 점이 로마가 그리스보다 더 오래 존속할 수 있었던 비결로 생각됩니다. 그리스의 전성기는 정확히 마라톤 전투에서 페리클레스의 연설까지, 대략 50-60년 정도의 짧은 기간입니다. 하지만 로마는 1,000년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므로 영웅이란 자신의 업적을 지속가능한 시스템으로 남겨야 하는 것입니다. 나폴레옹은 「나폴레옹 법전」을 남겼지만 히틀러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히틀러가 반짝 스타였다면 나폴레옹은 지속가능한 영웅인 셈이죠. 그래서 저는 이 책에 투스카니에서 초빙한 인물에 대한 좀 더 자세한 기록이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p. 82 “첫 번째로 그들은 오늘날 코미티움 혹은 회의장이라고 불리는 곳 주위에 둥근 도랑을 파고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물건의 첫 열매를 엄숙하게 던져 넣었다. 그 다음에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고향 흙을 조금씩 가져다가 함께 던져 넣었다.”]


공 : 이것은 로마 판 타임캡슐이자 Melting Pot, 곧 용광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로마도 결국 이민의 나라였다는 거죠. 로마시민으로 거듭나는 세리머니를 통하여 분파와 계파를 용인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당이나 조직에 가던 출신 학교 등의 계보가 계속 남아있습니다. 로마처럼 흙을 던져 넣는 의식이 없는 것이죠. 그래서 시너지 효과가 안 나옵니다. 민주당에서는 벌써 친노파와 비노파가 10년을 가고 있습니다. 새누리당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기업에도 서울대 연대 고대 동문회가 존재합니다. 예전에 한 음식점에서 우연히 몹시 한심한 꼴을 보았는데 카투사에서도 따로 고대동문회가 회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김 : 이제는 대화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벌써 밤 10시입니다.


공 : 오늘은 여기까지 이야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