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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인가? 조리돌림인가?

공희준 2015. 2. 26. 00:30

한 걸그룹 지망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걸치는 5년의 소중한 시간을 투자해 준비한 가수 데뷔가 무산된 것이 자살의 직접적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물론 언론의 보도일 뿐이므로 꿈 많은 젊은 아가씨가 일찌감치 세상을 떠나기로 결심한 진정한 이유는 영원히 수수께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듣자니 그가 생전에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는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모양이다. 순간, 뭔가가 내 명치끝을 강하게 내려치는 느낌이었다.


예로부터 칭찬은 남들 앞에서 시끄럽게 해대고, 꾸중은 뒤로 조용히 불러서 은밀하게 하라고 했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응시자들은 합격의 영광도, 탈락의 굴욕도 적게는 수십만 명에서 많게는 수백만 명이 시청하는 가운데 경험해야 하기 마련이다. 어느 프로그램에서는 경연장 입장이 불허된 참가자들의 부모들이 폐쇄회로 텔레비전을 통해 전해지는 진행상황을 초조한 표정을 지으면서 발을 동동 구르며 방송국 로비에서 안타깝게 바라보는 모습까지도 촬영하고 편집해 프로그램 내용의 일부분으로 태연하게 내보내더라. 까놓고 말해서 이건 전 세계의 식인종들이 공동출자해 설립한 방송사에서나 자행할 법한 잔인무도한 짓거리이다.


나는 되는 일은 없고, 안 되는 일은 무지하게 많은 지리멸렬한 삶을 살아왔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사실은 성공이든 실패이든 거의 모두 나 혼자서, 범위를 조금 더 넓혀봤자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 정도가 인지하고 있는 선에서 결과가 나왔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너무나 부끄럽고 민망한 나머지 당장 쥐구멍이라도 찾아 꼭꼭 숨고 싶더라.


IS(이슬람국가)처럼 희생자들에게 엽기적인 육체적 폭력을 행사하는 극단적 사례를 제외한다면 현대 문명사회에서 인간을 제일로 고통스럽게 하는 괴롭힘은 사회적 망신주기, 즉 조리돌림이다. 지금은 위로는 전직 대통령으로부터, 아래로는 평범한 누리꾼들에 이르기까지 수시로 조리돌림을 당하는 세상이 되었다. 솔직히 나도 조리돌림을 가하기도, 당하기도 하는 입장이므로 사회적 망신주기에 대해 전적으로 무고한 피해자인 양 크게 목소리 높여서 비판할 처지는 못 된다.


그럼에도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이 승자의 영광만을 조명하느라 실질적으로 조리돌림을 당한 셈이 돼버린 패자들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어떠한 배려를 해왔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세상은 패자를 조리돌리는 사회가 아니라 패자에게 다음에는 승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을 주는 사회일 것이기 때문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만 하는 부모님들에게도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리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