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의원(이하 문재인 대표)이 시종일관 고전 끝에 박지원 의원을 가까스로 따돌리고 새정치민주연합의 새로운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경선 며칠 전에 석연치 않게 룰을 바꾸는 “대의원 사리 추가” 식의 불공정한 경선관리가 없었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었으므로 그야말로 상처뿐인 영광이라고 하겠다.
나는 문재인 대표의 지지자들을 개인적으로 5명쯤 알고 있다. 그 다섯 분들께 일일이 말씀드리지 못하는 점을 너그러이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사실 다섯 명씩이나 알고 지내는 것도 대단히 신기한 노릇이다. 나도 사회생활 기술에서 확실히 장족의 발전을 이룬 듯싶다.
먼저 하고 싶은 얘기는 안타깝다는 말이다. 지금 문 대표의 지지자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과대망상에 가득 찬 허장상세와 다름없는 이유에서다. 130석의 거대한 국회 의석에, 한겨레신문과 오마이뉴스 등의 유력한 주류 진보매체들과 소위 시민사회진영에서 그를 일방적으로 밀어주고 있음에도 문 대표의 지지율은 지난 대통령 선거 득표율의 3분의1에서 4분의1 사이의 수준을 여전히 시계추처럼 지루하게 왕복해오고 있다. 전체 대권주자들 중에서는 그래도 선두라며 그의 지지자들은 자위성 과시를 해대고 있으나, 문재인 대표와 비슷한 과정을 평행이론처럼 거쳐서 대권 재수생의 길을 걸었던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내 기억으로는 당시 30프로가 훌쩍 넘는 탄탄한 지지도를 자랑했었다.
언론에 문 대표의 노출 빈도가 급격히 높아질 테니 그의 지지율은 어느 정도까지는 꾸준히 상승할지도 모른다. 허나 빈번한 언론 노출은 늘 양날의 칼과 같다. 그의 지지율이 산술급수적으로 속도로 증가한다면, 그에 대한 기존의 강고하고 광범위한 민심의 거부감은 기하급수적 속도로 한층 더 넓고 단단해질 것이 명약관화한 탓이다.
오래전부터 친노세력 안에는 선거의 귀재들이, 전략의 천재들이 자천타천으로 넘쳐나고 있다. 이런 자타칭 선거의 귀재들과 작전의 천재들은 문제인 대표가 현재 빠져 있는 치명적 늪에서 단숨에 탈출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거라고 호언장담하고 있을 가능성이 아마도 매우 크다.
미안한 소리겠으나 이런 선거의 귀재들과 전략의 천재들의 본질은 무책임한 허언을 함부로 일삼는 사이비 부채도사에 불과할 뿐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그들은 문 대표를 더 깊은 수렁으로 오히려 인도할 것이 뻔하다. 왜냐면 문재인 대표로 상징되는 친노 정치인들에게 늘 절망적으로 부족했던 중요한 자원은 신출귀몰한 전략전술이 아니라, 많은 국민들을 넉넉하게 자신의 품 안에 끌어안일 수 있는 겸손한 태도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심을 담아 하는 간곡한 고언이다. 문재인 지지자들은 문재인 대표를 진정으로 차기 대통령으로 만들고 싶다면 쓸데없이 패거리지어 여기저기 몰려다니며 무고한 사람들 조리돌릴 궁리 오늘부터 당장 그만두고, 모두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문 대표가 시켰다면서 다음 대선이 끝나는 날까지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든 정중하게 90도로 허리를 숙이기 바란다. 그게 문재인이 제시해야 마땅할 미래비전의 정수이자 대담한 혁신의 고갱이일 것이다. 남들이 문 대표를 욕하면 핏대 높이며 사납게 대꾸하지 말고, 그냥 “잘못했습니다”라고 딱 한 마디만 하면서 납작 엎드려라. 마지막으로 대권에 도전할 무렵의 김대중 대통령의 열혈 지지자들이 바로 그랬다.
천기누설을 불사한 나의 조언은 문재인 지지자들에게 물론 씨알도 먹히지 않으리라. 씨알도 먹히지 않을 짓을 피곤하게 왜 하냐고? 문재인 대표가 이승만-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할 때에 자기는 거기에 안 갔다며 알리바이를 요란히 남기고 있는 정청래 의원을 비롯한 새민련의 새 최고위원들처럼 나도 모종의 알리바이를 남기려는 목적에서다. 문 대표의 패배를 막기 위해 나 또한 최선을 다했다는 단 한 줄의 알리바이를.
월드컵이 경험하는 곳이 아니라 증명하는 곳이듯이, 최고위원은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책임지는 자리다. 그러나 당대표의 일거수일투족은 한 정당의 공식적 당론과 동일한 효과를 담지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잘못된 당론에 따르지 않았다는 알리바이를 SNS에서 부지런히 만들어내기에 여념이 없는 새민련의 신임 최고위원들의 치졸하고 잔망스러운 행동거지를 보니 문재인 대표가 이끄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이번 지도부 역시도 변함없이 싹수가 노랗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