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치러지는 전승기념일 행사에 불참하기로 결정한 모양이다. 5월 9일이 세계사에서 어떤 함의를 띠는지 안다면 절대 불참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까놓고 말해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이 추축국에게 승리하지 못했다면 디스토피아적 대안역사를 다룬 복거일의 「비명(碑銘)을 찾아서」는 소설책 속의 암울한 이야기로만 머물지 않았을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연합국의 추축국에 대한 승전은 실질적으로 나치스 독일에 대한 소련 인민의 승리였고, 그 승리를 위해 소련은 막대한 인적 희생과 물질적 피해를 감당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그 전쟁에서 소련을 대신해 2천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오대호 연안의 공업지대와 월스트리트의 금융가가 완전히 쑥대밭이 됐다면 자본주의의 맹주 미합중국과 사회주의의 종주국 소비에트연방 간에 이후 50년 가까이 동안 벌어진 격렬한 체제경쟁은 백이면 백 소련 측의 완승으로 귀결됐으리라.
물론 소련은 미국과 함께 우리민족에게 분단이라는 비극을 안긴 원수 같은 나라다. 김일성의 무모한 남침 오판에도 스탈린의 지원 약속이 결정적 동기로 작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러한 연유로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소련을 승계한 국가인 러시아의 가장 중요한 범국민적 행사에 더욱더 적극적으로 참석해 우리나라의 입장을 밝히고 한국의 국익을 증진하는 데 힘써야 한다. 더욱이 이번 전승절 기념행사에는 북한의 김정은도 참관할 예정이라고 한다. 꽉 막힌 남북관계에 숨통을 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일본 총리 아베는 역사의식이 부족하기로 세계적 정평이 난 인간이다. 문제는 2차 대전 종전일이 지닌 중대한 인류사적 의미를 인식하지 못하는 박근혜의 역사인식도 현재로서는 아베와 비교해 별로 나은 구석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박근혜와 아베의 역사의식 경쟁, 모델 현영과 섹시 아이콘 현아의 가창력 대결만큼이나 예측 불가능한 치열한 접전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